11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날씨는 음산했다. 맑은 하늘보다 구름 낀 날이 더 많았고, 잎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은 가로수와 고딕양식의 잿빛 건물도 이러한 우울함을 부추겼다.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이러한 날씨가 오히려 작품의 영감을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음악가 베토벤, 요한 스트라우스, 모차르트, 화가 클림트, 코코쉬카, 에곤 쉴레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예술가들이 중세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오스트리아를 유럽에서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비엔나, 오스트리아의 수도이자 동유럽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우리에게는 '비엔나소세지'나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내가 비엔나를 방문한 이유는 하나다. 바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바서의 발자취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자연과의 조화'라는 화두를 가지고 평생 세계를 떠돌며 작품 활동을 펼쳐온 훈데르트바서, 환경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지금, 그의 사상과 작품이 우리에게 말하는 의미와 교훈은 각별하다.
개성, 훈데르트바서의 건축철학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처음 방문한 곳은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였다. 알록달록한 건물 외관, 서로 다른 창문 크기, 여기에 덩굴이 창문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주변 건물과 쉽게 구분되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훈데르트바서의 건축 철학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피부, 의복, 건물, 사회, 그리고 지구가 우리를 지켜주는 5개의 스킨이라고 생각한 훈데르트바서. 그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핑계로 상자처럼 단조로운 건축물에서 벗어나, 우리의 몸을 덮는 옷처럼 개개인의 개성과 꿈을 표현할 수 있는 건물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비엔나 시영아파트 건축디자인 공모전에 훈데르트바서의 디자인이 채택되면서 그의 건축철학을 펼칠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탄생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지금은 유명 관광지이자 전세계에서 몰려든 공무원들의 주요 탐방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잘 보면 창문마다 조금씩 개성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기도 다를뿐만 아니라 형태와 창문 주위에 칠해진 색깔도 조금씩 다르다. 훈데르트바서는 도시의 대단위 주택단지나 아파트처럼 똑같이 찍어낸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창문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세입자 계약서에는 ‘한 사람이 창에서 팔을 뻗쳐 닿는 범위는 개인의 공간이며 그 공간만큼은 세입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다’ 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색채의 마법사
다음 방문지는 쿤스트하우스빈, 훈데르트바서 미술관이 있는 곳이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의 ‘Academy of Fine Arts’에서 3개월 동안 공부한 것이 전부일 정도로, 정규교육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여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 사물을 보는 남다른 시각, 그리고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금의 ‘예술가 훈데르트바서’란 명칭을 얻어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가 특징이다. '색채의 마법사'라 불릴 정도로 강력하고 화려한 색을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 본인이 원하는 색깔이 없다면 이를 직접 만들어 낼 정도로, 색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화가였다. 훈데르트바서의 이러한 작품은 쿤스하우스빈 곳곳에 남겨져 있다. 어느 작품도 같아 보이는 색깔이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을 이용해 사물을 표현한 훈데르트바서.
쿤스트하우스빈에서는 화장실에 가보자. 크기가 제 각각인 수많은 타일로 이루어진 내부, 직선을 거부한 체 벽면이나 모서리 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흰색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깔의 타일을 이용했고,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화장실이 아닌 매우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되었다. 이러한 화장실은 그의 건물 작품 대부분에서 볼 수 있다. 또한 구내카페인 둥켄분트는 재활용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뒀던 훈데르트바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중고용품을 사용해 크기와 모양이 조금씩 다른 탁자와 테이블, 벽면에 장식되어 있는 유리병, 그리고 철로 만든 가로등을 계단 기둥으로 사용한 것을 통해 재활용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자연과의 조화
온천마을 블루마우 조감도
도시의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건축을 비판했던 훈데르트바서, 건축물과 자연의 공존을 통해 영적 치유를 꿈꾸었는데, 그의 이러한 생각은 훗날 블루마우 온천마을을 통해 실현할 수 있었다. 1997년에 세워진 블루마우 온천마을은 자연과 조화로운 건축물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자연에는 곡선만이 존재한다고 여긴 훈데르트바서, 블루마우 온천마을 곳곳에서 이러한 굴곡의 유연함이 돋보이는 건축물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건물의 지붕과 지면의 구분이 더이상 의미가 없으며, 곡선으로 이루어진 선을 통해 전체가 하나의 통일감을 이루고 있다. 또한, 자연과 건축의 교감, 나아가 조화를 이루는 낭만적인 건축물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현실로 재현한 공간이다.
실제로 블루마우는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 같은 곳이다. 알록달록 칠해진 벽면, 크기와 모양이 다른 2,200여 개의 창문, 옥상과 지면이 하나로 연결된 독특한 디자인, 어느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블루마우에서의 하룻밤을 통해, 왜 블루마우가 오스트리아에서 인기 있는 숙박시설로 꼽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천재적인 작가의 예술혼이 서린 다양한 작품 속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곳에 올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물론, 일본과는 다른, 유럽풍 온천욕을 즐기며 쉴 수 있다는 것도, 블루마우의 인기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환경운동가, 훈데르트바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어니언(양파)이라 불리는 황금색 모스크가 멀리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훈데르트바서는 비엔나 시장이었던 헬멋 질크의 요청으로 슈피텔라우 지역의 난방 플랜트 개조작업을 맡았다. 사실, 환경운동가인 훈데르트바서는 쓰레기소각장 개조작업에 대해 반감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각장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는 시설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 하지만, 아무리 분리수거를 한다고 해도 쓰레기 소각장 자체는 필요하며, 첨단 기계를 이용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비엔나의 6만 세대에게 난방을 공급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훈데르트바서가 해당 작업을 수락했다고 한다.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 그리고 행인
훈데르트바서에 의해 재탄생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기존 소각장과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기존의 직선적이고 밋밋한 외관은 초현실적인, 그래서 미래세계에서 온듯한 느낌마저 드는 건물로 새롭게 태어났다. 외관뿐만 아니라 최첨단 기술을 사용해 분진이나 유해가스를 제거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매년 정부기관이나 수많은 환경단체에서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을 탐방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는 환경운동가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1974년 뉴질랜드 환경보호주간 포스터를 제작했고, 1982년에는 ‘당신은 자연에 들른 손님입니다. 예의를 갖추십시오.’라는 카피의 포스터를 워싱턴의 환경교육센터에 기부하기도 했다. 또한, 고래와 바다를 구하는 내용의 포스터를 환경단체인 그린피스에 기증했으며, 오스트리아 하인버그 원자력 발전소 반대운동을 통해 공사중단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자연과의 조화’라는 삶의 화두를 미술과 건축을 통해 실현시킨 오스트리아 비엔나 태생의 예술가 훈데르트바서. 그의 삶은 자연경시, 환경파괴로 고생하는 현대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 훈데르트바서, 그리고 오스트리아 여행!
- 블루마우, 훈데르트바서가 창조한 온천마을!
- 오스트리아 온천은 어때? 훈데르트바서의 블루마우를 가다!
<훈데르트바서 2010 한국전시회>
기간 : 2010.12.5~2011.3.15
장소 :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1,2,3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