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 하나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다. 특히, 어디 낯선 곳에 가면 이런 버릇이 두드러진다. 방문한 호텔 무료 메모지를 수집한다거나, 이용한 버스나 전철 티켓을 모으기도 한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행을 기념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기억하기 위함이다. 여행을 마친 후 수집하고자 하는 대상을 깡그리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엇인가에 집착하곤 한다.
이번 홍콩여행에서는 우편함에 집착했다. 녹이 잔뜩 낀 양철 우편함, 여기에 붉은색으로 쓰여진 글씨가 왠지 반갑게 느껴진다. 아니면 초록색 몸체에 흰색으로 쓰여진 우편함이란 글씨가 왠지 사진기 셔터에 손을 가져가게 만들었다. 그 이미지를 간직하고 싶어서.
섹오, 작지만 아름다운 홍콩 비치
중국에서는 우편함을 신샹(信箱) 이라고 부른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믿음상자', 내지는 '믿을수 있는 상자'쯤 되리라. 믿는 대상이 편지인지, 아니면 편지 내용인지, 그도아니면 우편함 내용물을 다른 누군가가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대상과 내용물에 대한 믿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홍콩에서는 이러한 우편함이 '썬썽'이라고 불린다. 우편함을 뜻하는 중국어 信箱, 표준어 '신샹'과 광동어 '썬썽'은 같은 한자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그 발음이 천양지차다.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체제인 중국과 홍콩. 또한, 그 발음의 차이만큼이나 홍콩의 우편함은 왠지 모르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이것이 내가 홍콩에서 우편함에 집착한 이유다.
마카오에 갔다. 마카오에서는 '信箱'이라고 적힌 한자 위에 'Correio'라고 적혀 있었다. 홍콩 우편함인 썬썽과는 또다른 느낌.
붉은색 칠을 한 포스트박스, 왠지 정겹다.
홍콩 곳곳에서 발견한 예쁜 우편함. 왠지 모르게 그 이름의 생소함만큼이나, 멋드러지게 홍콩 스타일을 뽐내는 것 같아 보였다. 사실, 한자만 아니라면 한국 어디에나 있을 법한 모양새이지만, 내용물을 볼 수 있게 구멍을 뚫은 것도 그렇고, 다양한 색깔을 칠한 것도 그렇고, 이것이 홍콩스타일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홍콩적인 것이 무엇이냐고요? 나라면 홍콩 우편함을 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속이 내비치는 양은 우편함, 그 속에 홍콩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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