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여행이야기

라오스, 새처럼 날아볼까?

도꾸리 2008. 12. 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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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방비엥에 가면 새처럼 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방콕에서 만난 어느 나이든 여행자에게서 말이다.
자신은 날아보고자 했지만 기털 빠진 팔과 축 늘어진 다리로는
도저히 날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당일 저녁 방콕에서 라오스 방비엥행 야간버스에 올라탔다.
방비엥 직행 버스가 없어 라오스 수도인 비엔티엔에 들려, 그곳에서 방비엥으로 가는 일정이다.

그렇게 만 하루를 달려 도착한 방비엥.
여느 여행처럼 숙소를 잡고 주변을 배회했다.
그리고 다음날 카약 투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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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에 참여한 인원은 대략 15~20명.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백인을 보면 모두 비슷해 보였다.
샤프한 이미지에 눈은 부리부리 크고, 코는 오똑하다.
그리고 꽤 쿨한 느낌의 그들.
나와 인사한 백인이 같이 참여한 다른 중국인에게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니
그쪽 상황도 아마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새차게 흐르는 강 위로 카약을 탄체 한참을 내려갔다.
2인용 카약인데 함께 탄 한국분과 호흡을 못맞춰 몇 번 배가 뒤집히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난 웃었지만, 같이 탄 한국인은 화를 냈다.
이유 있는 화일텐데 그 이유를 모르는 상황.
이럴 땐 그냥 모른척 지나가야 한다.
괜히 네가 잘했네, 잘못했네 말하기 시작하면 싸움으로 번지기 쉬우니 말이다.

점심을 먹고 한참을 더 가서야 클리프점핑 포인트에 도착했다.
한국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절벽 뛰어내리기' 정도 될까?
이름이야 어떠랴, 그 의미만 전하면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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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을 타고 온 백인들이 너도나도 뛰어내리기 시작한다.
즐거운 얼굴을 한체,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말이다.
절벽이라고 해봤자 10m 정도니 나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막상 점핑 포인트 인근에 도착하니 아래가 까마득해 보인다.
여태곳 지나온 강물 색깔이 갈색이라는 것을 절벽 위에 와서야 비로서 알게되었다.
새처럼 날아 강물로 떨어지면, 저 갈색 물이 내 벌려진 구멍 안을 비집고 모두 들어가겠지? 이런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 다리에서 힘이 빠지고 있는 사이 백인들은 벌써 한 순배 돌아간 느낌이다.
여자건 남자건 모두 신난 얼굴이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자부심인지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왠지 목장을 달리는 말을 쳐다보는 그것과 비슷하다.
드넓기는 하지만 어차피 한정된 곳에 갖혀지내는 사육된 말 말이다.

용기를 내보았다.
나에게 라오스에서 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그 늙은 여행자를 떠올리며.
그의 날 수 없었다는 핑계는 왠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10m 밖에 안되는 높이임에도 말이다.

일단 안전조끼를 벗었다.
오만한 감정을 앞세운 어리석은 선택이었지만, 내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무작정 포인트 앞으로 갔다.
주변의 시선이 느껴진다.
비슷해 보이던 백인들이 이제는 각기 별개의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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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날았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아래로 말이다.
날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날개의 파닥거림도 없었고, 힘빠진 다리의 허우적거림도 없었다.
그렇게 날기만 했다.
최소한 물에 떨어지기 전 그 몇 초 사이에는 말이다.

파랬던 하늘이 갑자기 갈색의 그것으로 변했다.
그리고 내 몸은 끝도 없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순간, 이대로 못 떠오르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갔다.
일순, 안전조끼를 안한 내 자신이 너무 바보같았고,
다른 한편으로 라오스에 오면 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그 늙은 배낭여행자가 떠올랐고,그리고 순차적으로 온갓 잡영상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닥을 찍은 내 몸은 아주 느리게 떠올랐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말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중력이라고 하겠지만,
나를 잡아당기는 힘은 내가 알고 있는 그 중력의 힘에 비해 너무 쎗다.

큰 숨을 내뿜으며 물 위에 떠오른 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안아서다.
내가 아래에서 불안했던 그 모든 것들을 그들은 모르는 듯,
바깥세상은 여전히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것은
지극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임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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