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08 푸켓

타이에도 자장면이 있다!

도꾸리 2008. 1. 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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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보디아 시엠립에서 먹은 자장면

중국에서 공부할 때에 즐겨 먹던 간식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출출해 질 때면 어김없이 찾아가던 학교 앞 식당. 이곳에서 자장면(炸醬面-자지앙미엔)을 맛볼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그것과는 조금은 다른 자장면을 말이죠.

우선 야채가 거의 없습니다. 중국식 된장인 춘장(春醬)에 기름과 향신료를 넣고 볶아 걸쭉하게 만든 후, 삶은 면 위에 부어주고 고명으로 오이 정도 올려줍니다. 한국에서 맛보는 고기와 감자, 양파가 들어간 자장면은 보기가 힘들죠. 또한,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소스가 한두 숟가락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적은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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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식 자장면을 먹은 'Old man's shop'         

이런 자장면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대략 1880년대 후반이라고 합니다. 조선 후기 개항과 더불어 광둥성 출신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인천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런 이주민들과 함께 자장면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초기 자장면은 중국식 자장면의 형태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물을 거의 섞지 않고 춘장 본연의 맛을 살린. 그러다 1950년대 이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단맛을 강조하기 위해 양파도 들어가고, 특유의 춘장 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물을 섞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자장면을 캄보디아에서 우연한 기회에 먹게 되었네요.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시엠립에 있는 화교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말이죠. 어찌나 반가웠던지 식사를 다하고 나서도 한동안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앞에서 하느라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오래간만에 북경 특유 억양의 정겨움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리고 한동안 자장면의 맛을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타이 푸켓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푸켓타운에서 빠통비치를 가기 위해서는 썽테우라고 불리는 현지 로컬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그 썽테우 정류장 인근에서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말이죠.

원래 주문하려고 한 음식은 닭고기를 넣은 쌀국수였습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런지 오늘은 더는 안 판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여기 미팟이 맛있다며 먹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처음 듣는 음식이기에 호기심도 있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그냥 대충 요기나 할 요량으로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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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점 주인아저씨. 중국인 특유의 장사꾼 기질이 다분함.
그래도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고마웠다.
 

주문을 받더니 이내 주인장은 나에게 중국인이냐고 물어보더군요. 자기는 푸젠성 출신이며 이곳에서 주로 푸젠성 음식을 만들어 판다고. 또한 개별여행자들을 위해 일일관광도 신청 받는다고 말이죠. 대충 의중을 알아차리고 맞장구나 쳐줄 요량으로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푸켓 인근 일일관광이 얼마인지, 숙소는 얼마인지.

주인은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것저것 제안을 했습니다. 대부분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하며 말이죠. 몇 번이나 사양을 해도 말이죠. 그렇게 우리들의 대화는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어지게 되었네요.

음식이 나온 후 처음에는 자장면인지 몰랐습니다. 중국식 자장면이라면 으레 삶은 면에 볶은 춘장을 부어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춘장에 면을   볶았더군요. 게다가 '까나'라 불리는 'chinese kale'과 튀긴 두부를 함께 넣어서 말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맛이 자장면의 그것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 먹어 봐도 분명히 자장면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자장면이 맞는지 물어봤네요. 아니나 다를까 주인장도 자장면이 맞다고 이야기합니다. 다만 자장면이 타이에 들어와 타이식으로 변화되었다고 말이죠. 한국에서는 많이 재배되는 감자를 넣은 것처럼, 타이에서는 거의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까나'를 넣게 되었다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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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이식 자장면. 여기에 고춧가루 듬뿍 뿌려 먹었다

음식은 단맛보다 짠맛이 강합니다. 춘장으로 볶아서 그런지 춘장 본연의 맛에 충실하려고 한 것이 역력해 보입니다. 거기에 까나 특유의 맹맹한 맛이 춘장의 짠맛을 중화시켜주고, 튀긴 두부의 고소함이 더해져 입안을 즐겁게 해줍니다. 오랜 시간 식당을 운영했는지 춘장 볶는 냄새가 온 식당 안에 배어 있어, 오래간만에 춘장 냄새를 만끽할 수 있는 호사(?)도 부리게 되었네요.

중국식 자장면이 아니라 타이식 자장면을 먹게 되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맛있고 좋았습니다. 어디서나 우연하게 발견되는 내가 아는 음식들의 흔적들. 이런 재미에 여행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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