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소개

주간동아 기고 - 북경 대산자 798 예술구~

도꾸리 2007. 12. 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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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갤러리의 벽에는 인간 조형물 위에 바코드가 찍힌 독특한 작품이 장식돼 있다.

온통 붉은색으로 치장한 거리의 모습, 밋밋하게 뻗은 도로, 특색 없는 건물들…. 몇 년 만에 방문했지만 중국 베이징의 모습은 예전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단지 길을 물어봤을 뿐인데 따지듯 대답하는 중국인의 말투도 그렇고, 구름 한 점 없지만 불투명한 하늘도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도로에 자전거보다 자동차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베이징에 머무는 동안 무엇을 보고 느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중국 예술의 전위, ‘따산즈(大山子) 798 예술구’에 가보라는 제안을 받은 것. ‘따산즈 예술구’ 혹은 ‘798 예술구’로 불리는 이 지역은 과거 창고로 쓰이던 공장을 개조해 예술가의 스튜디오나 전시장으로 만든 곳이다. 그곳에 가면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고, 작품도 구매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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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산즈 예술구 입구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798 예술구로 향했다. 똥즈먼역에서 401번 버스를 타고 따산즈 루코우난(路口南) 정류장에 도착했다. 한국 사람이 특히 많이 살고 있는 왕징(望京)이 근처에 있어서인지,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한글 간판이 종종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린 뒤 798 예술구로 통하는 입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택시기사는 물론 현지 주민들도 798 예술구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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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에서 798 예술구로 통하는 길 주변에는 예술의 자취를 느낄 만한 이정표가 거의 없었다. 아파트 앞쪽 길로 300여 m 들어가자 회색 벽돌담과 어우러진 아름드리 침엽수가 나타났다. 그 아래 ‘따산즈 예술구’라고 붉은색 글씨로 쓰인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바로 베이징의 ‘소호(미국 뉴욕에 있는 예술가들의 거리)’로 통하는 ‘따산즈 예술구’의 첫 관문이다.

작가들 하나 둘 모여들어 지금은 중국 예술의 전위 ‘각광’
 

2000년까지만 해도 따산즈 지역은 여러 개의 국영공장이 모인 공장지대였다. 1950년대 소련의 원조로 지어진 이들 공장에서 군수물자가 활발하게 생산됐다. 하지만 계획경제 시대의 틀에 맞게 만들어진 이들 공장은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을 펴면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동이 중단된 빈 공장들이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거듭난 것은 2001년 중앙미술학원이 인근에 이전해 오면서부터다. 공장지대라 건물을 싼값에 임대할 수 있고 넓은 작업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젊은 예술인들이 따산즈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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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 해 동안 이곳에 황루이, 구디페이, 위판 등 많은 예술가의 아틀리에(화실 또는 공방)가 속속 들어섰다. 798 예술구는 이제 아틀리에, 갤러리, 카페, 바 등이 밀집한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공간으로 성장했다. 해외 신진 작가들이 이곳에 둥지를 트는 경우도 꾸준히 늘고 있다. 또 2002년부터 현재까지 크고 작은 미술전이 40여 차례 열리고 있다. 공장 지역답게 789 예술구에 자리한 건물들의 외관은 매우 투박하다. 붉은색 벽돌건물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모습이나 건물 한쪽에 녹슨 파이프들이 쌓여 있는 모습을 보면, ‘과연 이곳이 중국 예술의 전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공장 내부 벽면은 노동자들의 투쟁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썼을 법한 각종 선전구호들로 장식돼 있다. 이러한 계획경제 시대의 흔적은 젊은 예술가들의 재기발랄한 예술작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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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을 개조해 만든 예술가들의 작업실


공장 내부의 중앙 통로 좌우로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공간 겸 전시실이 여러 개 마련돼 있다.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 화가, 바이어로 보이는 남자에게 자신의 작품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예술가…. 패기와 열정으로 뭉친 예술가들의 작품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를 얻는다. 젊은 작가가 많은 곳답게 재기 넘치고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따산즈 예술구 거리 곳곳에서 관광객을 유혹한다. 한 갤러리의 벽에는 몰개성화된 현대인을 비판하는 듯, 벽면과 비슷한 색깔의 인간 조형물 위에 바코드가 찍힌 독특한 작품이 장식돼 있다. 다른 건물의 벽에는 전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래피티(graffiti•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를 뿌려 그린 그림)가 그려져 있다. 그래피티 앞 돌기둥에는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성이 그려져 있는데, ‘한국의 바바리맨이 중국으로 원정 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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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 예술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단연 화장실이다. 중국은 화장실이 열악하기로 소문나 있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최근 청결하고 현대화된 화장실을 갖춰나가는 추세다. 일부 대형 관광지의 경우 화장실 청결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입구에 표식을 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의 화장실 청결 운동도 이곳은 비켜간 것 같다. 칸막이도 없이 변기만 늘어선 화장실 내부는 이용자가 아무도 없었지만 들어가기가 왠지 민망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재기발랄한 젊은 예술가 여러분! 생활 속의 예술(?)을 실천해주세요!’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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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산즈 예술구에는 과장된 몸짓을 하고 있는 프로파간다 작품이 종종 눈에 띈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정치적 색깔이 농후한 프로파간다(선전) 작품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다. 머리에 띠를 두른 채 과장된 몸짓을 하고 있는 동상, 투쟁의 메시지가 담긴 붉은 글씨의 구호들, 계몽적인 내용을 담은 벽화 등을 보니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하며 변화한 중국은 더 이상 공산주의라는 이념적 가치로만 대중에 다가서지 못하는 듯했다. 관람객들은 그저 프로파간다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 찍기에 열중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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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마오저둥(毛澤東)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붉은 글씨로 798이라고 쓰인 걸개그림 바탕에 그의 모습이 잿빛으로 프린트돼 있었다. 구겨진 옷을 입고 모자를 약간 올려 쓴 마오쩌둥은 피곤한 듯 거슴츠레 뜬 눈으로 행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그는 자신의 모습이 미술관의 선전도구로 쓰이게 될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며 개혁•개방의 드라이브를 가속화한 덩샤오핑(鄧小平)에 대해 그는 어떤 평가를 내릴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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