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열도의 혼슈와 큐슈 사이에 시코쿠四国라 불리는 섬 하나가 있다. 도쿠시마현徳島県, 가가와현香川県, 에히메현愛媛県, 고치현高知県 등 4개의 현이 있는 섬으로, 예부터 천혜의 자연환경과 전통 유적지가 잘 보전된 곳으로 일본 내에서 유명하다.
시코쿠지역은 일본인에게도 조금 낯선 곳이다. 주요한 관광지는 대부분 간토와 간사이에 분포해 있고, 여기에 북으로 홋카이도, 남으로 오키나와 정도가 일본인이 자주 가는 관광지이다.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 가가와현이나 에도시대 무사로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던 사카모토 료마의 출생지인 고치현 정도가 그나마 시코쿠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아닐까한다.
도쿠시마 명물 소용돌이, 그리고 우즈노미치
시코쿠 동부의 도쿠시마현을 다녀왔다. 효고현 고베와 다리를 통해 연결된 도쿠시마현은 시코쿠의 다른 현에 비해 간사이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간사이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려 나루토해협鳴門海峡에 도착했다. 이곳은 도쿠시마의 동북단과 효고현의 아와지섬 사이 해협으로 세계 3대 해협으로 불리는 곳이다. 나루토해협은 폭 1.4km, 깊이가 90~200m 정도이다. 또한, 최대유속이 20km/h로 일본 내에서 물살이 가장 빠른 곳이다. 좁은 폭과 깊은 수심, 여기에 빠른 유속으로 인해, 나루토해협에서는 소용돌이가 자주 발생하는데, 큰 것은 지름이 20미터가 넘는 것도 있다.
오나루토쿄에서 소용돌이를 보고 있는 아이들
도쿠시마현의 가장 큰 볼거리중 하나가 바로 이 소용돌이이다.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인 만조와 반대로 해수면이 가장 낮을 때인 간조에 소용돌이가 가장 커진다. 이러한 소용돌이를 보는 방법은 2가지다. 관광선을 타고 배 갑판에서 소용돌이를 직접 보는 것과 나루토해협을 가로지르는 오나루토쿄(大鳴門橋)에서 보는 방법이다. 관광선을 타면 불과 몇 미터 거리를 두고 소용돌이를 볼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오나루토쿄 위에서 내려다보는 소용돌이도 멋지다. 매년 수 십 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이곳을 찾을 정도로 도쿠시마현의 가장 큰 볼거리 중 하나다.
나루토해협 인근에 오츠카국제미술관大塚国際美術館이 있다. 이곳은 스포츠음료로 유명한 포카리스웨트를 만든 오츠카제약이 소유한 미술관이다. 실제로 오츠카제약은 1920년대 도쿠시마현을 근거지로 처음 설립되었다. 스포츠음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지금, 오츠카제약은 부의 지역환원 차원에서 오츠카국제미술관을 세웠다.
오츠카국제미술관은 세계 최초 세라믹 아트 뮤지엄을 표방한 곳이다. 세라믹 아트란 일종의 도자기 판화로, 세계 유수의 작품과 같은 크기로 재현한 세라믹 아트를 오츠카국제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세계 25개국의 190여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명화 중 1000여 점을 엄선하여 도자기 판화로 구웠는데, 원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노력이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다.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내부를 세라믹 아트로 재현한 공간
입구 근처에는 건축가 조반니 데 도르티의 설계로 1481년 완공된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내부를 재현한 공간이 있다.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이곳을 세라믹 아트로 재현해 놓았다. 또한, 14세기 이탈리아 화가 지오토의 벽화가 있는 스크로베니 예배당도 이탈리아 파보바에 있는 원본과 똑 같은 크기로 이곳에 재현되어 있다. 도자기 판화로 재현한 카피본이기는 하지만, 작품 질감이나 분위기마저 거의 흡사하게 만들었다.
오츠카국제미술관 내 정원인 모네의 수련
또한, 오츠카국제미술관 한쪽에는 인상주의 화가의 대명사인 모네의 이름을 딴 정원이 있다. 모네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꽃인 수련을 이미지한 정원은 날씨가 좋은 날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하기에 딱 좋다.
도쿠시마의 특산품 스다치. 라임과 비슷하다
여행을 가면 밤에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 사전에 알아보는 편이다. 저녁에 할 일 없어 빈둥빈둥 거리는 것은 성격상 못한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현지에서 공연 같은 것을 주로 본다. 북경의 잡기공연, 상해의 서커스, 방콕의 게이쇼, 하노이의 인형공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아와오도리 공연 모습
도쿠시마에는 이러한 저녁 볼거리로 아와오도리阿波踊り공연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제까지 여행지에서 경험한 저녁 볼거리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공연이었다. 아와오도리는 400년의 역사를 가진 일본 전통 무용이다. 일본에서는 축제 때 추는 춤을 봉오도리 盆踊り라고 부르는데, 아와오도리는 이러한 봉오도리 중에서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은 춤이다. 공연에서는 여자들의 흐느적거리는 손놀림, 남자들의 경쾌한 발걸음, 이러한 것들이 흥겨운 음악과 어우러져 멋진 춤판이 펼쳐졌다. 춤의 형태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긴 했지만, 흥겨움이 왠지 브라질의 삼바춤과 비슷했다.
아와오도리 공연 모습
도쿠시마 시내의 아와오도리회관에서는 이러한 아와오도리 공연을 매일 관람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진행되는 공연 중간에 관람객이 참여해 춤을 배우는 시간이 있는데, 꼭 참석해보자. 아와오도리 춤이 보기에는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데, 직접 해보면 무척 어렵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논다.
우다츠노마츠나미 거리 전경
걷기 좋은 거리가 많은 일본, 특히 시코쿠는 일본 내에서도 도보여행의 성지다. 거리가 예쁘지 않으면 지겨워서 걷지도 못한다. 예쁘고 걷기 좋은 길이 많은 시코쿠. 이러한 시코쿠에서도 도쿠시마의 우다츠노마츠나미うだつの町並み는 각별한 곳이다. 일본 아름다운 거리 100선에 꼽힌 우다츠노마츠노미에는 에도시대부터 시작해 메이지시대, 그리고 다이쇼시대에 이르기까지 수 백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우다츠노마츠나미 입구에 들어서면 타임슬립을 한 기분이다. 일본 시대극에나 나올듯한 건물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다. 오래된 건물 안에서 갑옷을 입은 무사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우다츠노마츠나미 거리 풍경
우다츠노마츠나미의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고자 한 노력은 거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우다츠노마츠나미에는 전기줄이 안 보인다. 물론 전신주도 없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거리를 만들기 위해, 전기줄을 모두 지하로 숨겨버렸다. 또한, 오래된 건물을 고치거나 새로 지을 때 정부의 허가를 받게 한 것도, 우다츠노마츠나미가 전통미를 간직할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다.
도쿠시마는 산지가 80%가 넘을 정도로 산맥이 발달한 곳이다. 이러한 도쿠시마를 요시노라 불리는 강이 가로지르며 흘러가고 있는데, 이러한 강의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협곡이 바로 오보케(大歩危) 계곡이다. 오보케계곡 주변은 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입자가 굵고 거친 결정편암이 많은 지역으로, 2억년에 걸친 요시노강의 침식작용에 의해 현재의 오보케계곡이 탄생했다.
오보케계곡에 들어서면 자연이 만들어낸 멋진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중국 계림이나 베트남 땀꼭의 기암괴석과는 또다른 풍경을 자랑한다. 관광선을 타면 오보케계곡의 멋진 경치를 더 가까이 즐길 수 있다. 장마로 인해 수량이 늘어나는 여름에는 카약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야지방의 한 온천시설에서 발견한 혼욕장
일본에 혼욕탕이 있을까? 혼욕이 지금도 있다는 것은 일단 맞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에서 젊은남녀가 벌거벚고 온천욕을 즐기는 모습을 찾아보기는 사실 힘들다. 혼욕을 하는 장소도 한정되어 있으며, 있어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할머니가 대부분. 또한, 두꺼운 타올로 몸을 감고 탕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실상 혼욕이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이야지방의 한 온천 다다미방 내부
도쿠시마에 이러한 혼욕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오보케계곡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야지방이 나오는데, 이곳 온천시설 중 몇 곳에서 혼욕장을 실제로 운영하고 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남녀 노천탕이 각각 있었고, 한쪽에 혼욕탕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혼욕이 가능할 정도로 산간오지인 이야지방.
도쿠시마의 명물 라멘. 돼지고기 볶음과 날계란이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도쿠시마, 대도시 여행에서 얻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도쿄나 오사카처럼 현대적인 일본에 지쳤다면, 다음 여행지를 도쿠시마로 정하는 것도 멋진 선택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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