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온 친구가 작심한 듯 물었다.
“너희 장모님은 직장 옮기라는 말 안 해?”
친구는 장모 때문에 회사를 옮기게 생겼다고 했다. 장모가 사위 직장이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이직하게 됐다는 것이다.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해 동창들의 부러움을 샀던 녀석인데, 장모 등쌀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듯싶었다. 그런 친구에게 “일본 장모님들은 안 그래”라고 자랑(?)할 수 없는 나는 꽤 난감했다.
일본의 가족관계는 한국에 비해 그리 끈끈하지 않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가족 울타리에서 독립해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많아서인지 가족관계가 느슨하다. 물론 1월1일 오쇼가츠(お正月·설날)나 오봉(お盆·추석) 같은 명절엔 가족이 모여 음식을 만들거나 온천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는 명절에 한해서다. 평소에도 전화나 e메일을 주고받긴 하지만 이는 서로의 사생활을 최대한 지켜주는 범위 내에서다. 간섭은 없다.
가족 간 돈문제는 특히나 확실하다. 일본인 아내도 대학 다닐 때 부모에게 빌린 등록금을 졸업 후 다 갚았다고 한다. 그게 당연한 거란다. 부모는 자식 덕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식 또한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 부모 자식 사이가 이럴진대 사위, 며느리와의 관계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대표 명절인 오쇼가츠 때였다. 처가에 가기 전 아내와 함께 시내 백화점에 들렀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선물로나마 달래드릴 요량이었다. 백화점 구석구석을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지 못했다. 아내에게 차라리 현금을 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일종의 ‘코리안 스타일’로. “일본에서는 현금보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한다”며 만류하는 아내를 “내가 다 책임지겠다”고 뿌리치고 봉투에 얼마간의 돈을 담았다.
서로 예의 존중 ‘일본식’ 배려에 당황
그날 저녁, 장인 장모와 식사를 마치고 봉투를 드렸다. 두 분은 흠칫 놀라더니 뇌물 챙긴 공무원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급기야 돈봉투를 되돌려주려고 했다. 결국 아내가 나섰다. 한국에서 3년간 살면서 한국의 문화와 관습을 익힌 아내는 “한국에서는 명절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부모에게 현금을 드리는 게 관례”라고 설명했다. 결국 봉투를 받아주셨지만, 장인 장모는 “여전히 직장에 다니며 돈을 벌고 있는데, 자식도 아닌 사위가 주는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사실 일본인 장모의 무관심에 한국 사위가 서운했던 적도 있다. 온천으로 유명한 규슈 벳푸에 가족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여행 계획을 짠 장모가 할머니, 장인 그리고 처남 2명까지 5명의 교통편 및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여행 일정을 알려줬다. 가족여행이니 참석했으면 좋겠다고.
그땐 좀 당황스러웠다. 바로 얼마 전 아내와 여행을 다녀온 터라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웠다. 미리 얘기해주셨더라면 당초 계획을 바꿔서라도 처가 식구들과 여행 갈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가?” 하는 몹쓸 생각까지 들었다. 서운한 마음을 감춘 채 “다음에 함께 가겠다”며 거절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이것도 일종의 배려였다. 장모라고 하여 사위에게 강압적으로 가족여행에 참석하라고 할 수 없어서, 일단 나와 아내를 제외하고 예약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정이 확정된 뒤에야 슬쩍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 이런 세심한 배려를 헤아리지 못하고 늦게 연락했다고 속으로 타박만 했던 나, 한국 사위.
‘돈봉투 사건’ 이후 장모와 가까워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최대한 일본식 예의를 따르려 하겠지만, 한국인이라 가끔 한국식 친근함으로 다가설지도 모르겠다. 자주 전화하고, 찾아뵙는 외국인 사위를 과연 장모가 어떻게 생각할까? 애틋함이 절절한 가족관계에 익숙한 나로서는 일본식 미지근함보다 한국식 화끈함이 더 와닿는다. 이런 사위가 장모는 부담스러울지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 한국식과 일본식의 황금분할을 찾는 중이다.
♡ 포스팅이 유익 하셨다면 한일커플의 B(秘)급 여행을 구독해주세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