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04년~08년)

'졸라깨'를 아세요?

도꾸리 2007. 12. 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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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미터가 넘는 크기. 입에서 나오는 기다란 혓바닥. 게다가 발톱까지.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정확히는 이놈을 태국어로 '쩌라케'라고 한다. 이 놈을 알게 된 계기가 재밌다. 태국 방콕에 있는 사원 중 하나인 왓 벤짜마버핏을 가기 위해서 왕실경마장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왕실경마장은 담이 없고, 경마장 주위를 수로가 에워싸고 있다. 사람이 건너 뛰지 못할 정도의 크기.

또한 담은 없어도 사람 키 정도로 조경이 꾸며져 있어 내부가 잘 안 보였다. 그러던중 수로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갑자기 멈춘 발걸음. 나를 쳐다보는 난생 처음 보는 동물의 눈초리. 그 순간 사진을 찍어서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이밀었지만, 이 놈이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대략 이 놈의 모습은 이랬다. 커다란 뱀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발을 가지고 있었다. 도마뱀 종류라고 하기에는 이 놈의 크기가 너무 컸다. 1미터 이상. 그렇다고 뱀이라고 하기에는 발을 가지고 있었다. 악어라고 하기에는 생김새(동물원에서 본 악어 모습과 비교해서)가 달랐다.

경마장 주위는 인적이 드물었다. 도로 위로 차만 지나가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수로 또한 고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길과 연결되어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놈이 계속 이곳에 살고 있으면서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를 난 인적이 드물고, 물길이 다른 곳과 연결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전세계 동물도감에 없는 것이라도 찾은 마냥 들뜨기 시작했다. 최소한 내가 동물원에 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참 동안 이 놈이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이 놈의 정체에 대해서 알려야 했기 때문에. 하지만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아쉬웠다. 먼가 커다란 특종을 놓친 듯한 기분….

마침 경찰이 지나가길래 붙잡고 이야기를 했다. 이곳에 이상한 동물이 살고 있다고. 30분이나 기다렸는데, 안 나타난다고. 이 놈이 왕실경마장에 들어가면 큰일이니까, 수로의 물을 빼서 이 놈을 잡아야 한다고. 경찰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고개만 끄덕인다. 젠장.

예전에 비오는 우기에 왓벤짜마버핏 근처에서 뱀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그것도 대로 한가운데 있는 나무를 말이다. 크기가 작은 것도 아니고 2미터는 족히 되는 뱀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고 있었다. 정말로 '어메이징 타일랜드'였다.

갑자기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발길을 수로가 연결되어 있는 동물원으로 돌렸다. 혹시 그놈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방콕 동물원은 걸어다니기에는 좀 크다. 볼 것은 별로 없지만 연인끼리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하기에는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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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처럼 물살을 가르며 유영중인 쩌라케~ 동남아시아,
특히 수상가옥이 많은 지역에서는 자주 출몰한다고 한다.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주변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있다. 무슨일인가 해서 가봤다. 이런, 그 놈이다. 아까 경마장에서 봤던 그 놈 말이다. 이 놈과 여기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와 마키에게 보여주었다.

"이놈은 머하는 놈이여?"
"아~~ 졸라깨~."

갑자기 한국어가 들렸다. 그것도 '졸라깬다'는 마키의 한 마디. 내가 무슨 잘못을 한거지? 단지 이상한 동물을 보고 사진을 찍어 보여준 것 뿐인데….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인가? 아니면 이런 이상한 동물을 찍고 다니는 내 모습이 한심해 보여서 그런 것일까? 갑자기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엥? 무슨 소리야~ 내가 그렇게 한심해?"
"졸라깨를 졸라깨라고 부른 것 뿐인데 문제 있어?"

더욱 가관이다. 내가 졸라깨서 졸라깼다라니. 그런데 갑자기 생각이 드는 것이 있었다. 졸라깬다니? 내가 가르쳐 준 적이 없쟎는가. 어떻게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졸라깨'라는 표현을 하지?

"도대체 졸라깨가 무엇인지 알아?"
"그 동물~ 그 동물을 '졸라깨'라고 불러~"

알고 봤더니 저 동물을 졸라깨라고 한다. 아니 정확한 발음은 태국어로 '쩌라케'라고 한다. '쩌라케'를 잘못 들어 '졸라케'로 듣고, 또 그 '졸라깨'를 '한심하다'라고 잘못 해석한 나.

방콕 시민의 휴식처인 룸피니 공원에 가면 가끔 가다가 이 놈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비가 오면 물 속에서 나와 운동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달려들어서 TV에도 몇 번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유명해진 '쩌라케'.

내친김에 '졸라깨'의 의미를 가르치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필수 어휘라고. 앞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라고 말이다.

"왜 그런 사람들 있쟎아~ 얼굴도 잘생기고, 옷도 잘 입으면서 공부도 잘하는. 그런데 남들 앞에서 막 방귀 뀌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한테 우리는 '졸라깨'라고 불러~ 자~ 따라해봐, 졸라깨~"

'오나라' 사건 이후 마키는 내가 방귀라도 뀌면 매번 이 말을 한다. "진짜 졸라깨~~"라고 말이다. 어느새 '진짜'라는 표현까지 익혀서 말이다. 어린아이처럼 쑤욱 받아들이는 마키.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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